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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소낙비 / 이연실

국내음악감상실

by 적산 2011. 8. 4.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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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낙비

이연실

성음, 1973년

 

요즘처럼 비가 억수같이 쏟아 붇는 날이면 전 <소낙비>라는 노래가 곧잘 떠오릅니다.

김민기, 한대수, 서유석과 함께 초창기 한국 모던포크의 4인방으로 꼽히는 양병집 씨가 밥 딜런의 곡을 번안해 만든 곡을 이연실 씨가 부른 노래 말입니다. 우선 <소나기>의 가사를 잠깐 살펴볼까요?

 

소낙비(1973)

밥 딜런 작곡 / 양병집 번안

어디에 있었니 내 아들아 / 어디에 있었니 내 딸들아
나는 안개 낀 산 속에서 방황했었다오 / 시골의 황톳길을 걸어 다녔다오
어두운 숲 가운데 서있었다오 / 시퍼런 바다 위를 떠다녔었다오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보았니 내 아들아 / 무엇을 보았니 내 딸들아
나는 늑대의 귀여운 새끼들을 보았소 / 하얀 사다리가 물에 뜬걸 보았소
보석으로 뒤덮인 행길을 보았소 / 빈 물레를 잡고 있는 요술쟁이를 보았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 끝없이 비가 내리네

무엇을 들었니 내 아들아 / 무엇을 들었니 내 딸들아
나는 비 오는 날밤에 천둥소릴 들었소 / 세상을 삼킬 듯한 파도 소릴 들었소
성모 앞에 속죄하는 기도소릴 들었소 / 물에 빠진 시인의 노래도 들었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 소낙비 끝없이 비가 내리네

누구를 만났니 내 아들아 / 누구를 만났니 내 딸들아
나는 검은 개와 걷고 있는 흰 사람을 만났소 / 파란 문으로 나오는 한 여자를 만났소
사랑에 상처 입은 한 남자를 만났소 / 남편밖에 모르는 아내도 만났소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 끝없이 비가 내리네

어디로 가느냐 내 아들아 / 어디로 가느냐 내 딸들아
나는 비 내리는 개울가로 돌아갈래요 / 뜨거운 사막 위를 걸어서 갈래요
빈손을 쥔 사람들을 찾아서 갈래요 / 내게 무지개를 따다준 소년 따라 갈래요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소낙비 / 끝없이 비가 내리네

전 이연실이 부른 <소낙비>라는 이 노래를 들을 때, 괜시리 애수에 잠기는 듯한 보통의 애상적인 비 노래들하고는 좀 다른 분위기로, 경쾌한 리듬 속에 비가 힘차게 내리는 역동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듯도 하고, 젊은 날 가슴속의 뜨거운 열정을 빗속을 방황하며 식히고 싶었던 그런 것도 떠오르고, 어딘지 몽상적인 분위기 속에서 뭔가 새로운 희망과 이상을 추구하는 그런 노래인 듯 느껴졌었습니다. (양병집이 그 특유의 시니컬하고 텁텁한 목소리로 부른 <소낙비>도 또 다른 매력이 있죠.) 하지만 이 노래를 불러보려고 하면 이미지가 전체적으로 잘 연결이 되지 않아 가사가 잘 외워지지 않고 그냥 단편적으로만 생각나는 그런 노래였습니다.

왜 그럴까 생각하고, 밥 딜런이 부른 원곡 'A Hard Rain's A-Gonna Fall'를 살펴보니 양병집의 <소나기>는 원곡과 같은 부분도 있고 전혀 다른 부분도 있고 말하자면 번역곡도 아니고 번안곡도 아닌, 그래서 전체적인 의미가 전혀 다른, 그런 어중간하고 막연한 노래가 돼있더군요. 그건 번안자가 원곡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를 못했거나 단순히 멜로디에 맞는 말만 붙여서 원곡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대중적 인기만을 위해 만든 곡이라 그럴까요? 글쎄요? 제 짐작으론 서울대 영문과 출신으로 의식 있고 사회 풍자적인 노래를 만들어온 양병집 씨가 그랬을 것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70년대 우리 사회의 분위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원곡 그대로 직역을 했거나 원작자의 의도에 맞는 새로운 가사를 붙였다면 이 노래는 심의도 통과하지 못했을 테니까요.

양병집 씨는 70년대에 그가 직접 작곡한 뛰어난 자작곡은 별로 없어도, 70년대 포크음악 4인방으로 거론되는 것은 우리 포크음악 초창기에 미국의 정통 포크음악을 우리 실정과 우리 정서에 맞게 번안한 뛰어난 번안곡들로 포크음악의 진가를 알게 해준 공로가 크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은 너의 땅(Peter Sieger 곡)", "역(逆),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Bob Dylan 곡)", 서울하늘(Woody Guthrie곡) 등을 보면 우리의 현실이 반영된 훌륭한 번안곡이라고 할 만합니다. '역' 이나 '서울하늘' 같은 곡은 원곡과는 전혀 다른 제 2의 창작으로 어느 면에서는 원곡보다 더 훌륭하다고 느껴지기도 하죠. 하지만 당시 그가 번안했거나 직접 작곡한 노래들은 대부분 심의 불가, 방송부적격(가사, 창법)등의 이유로 금지처분을 받게되어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제가 보기에 양병집이 남긴 번안곡 중에 가사 내용으로 볼 때 가장 애매모호하고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소나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양병집이 만든 노래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노래가 되었습니다. 과거 우리 사회의 통제적인 분위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밥 딜런의 'A Hard Rain's A-Gonna Fall' 이란 명곡이, 한국의 대중들에게는 그 깊은 사회적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고 막연한 동경과 보헤미안 의식을 담은 노래처럼 돼버린 점은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 중략 -

출처 : 시와음악 사랑
글쓴이 : 호수공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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