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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49재

불교사랑

by 적산 2011. 11. 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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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후 49일에 불보살 초청 업보푸는 공양- -산사람·죽은사람 다함께 집착심 놓아야- 집안에 되는 일이 없고 자꾸 힘든 일만 생기자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데리고 용하다는 무당을 찾아갔다. 무슨 액운이라도 끼었나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신을 불러 점을 치던 무당이 시어머니를 보고 “집안에 젊어서 죽은 여자가 있느냐”고 물었다. 시어머니는 너무도 영험하다는 표정으로 “오래전에 친정을 방문한 딸이 시집살이가 힘들다며 자살한 일이 있다“고 대답하였다. 무당은 그거보라는 듯이 의기양양하였다. 시어머니는 “절에서 사십구재를 지내 주었는데, 딸이 아직도 저승을 못갔습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무당은 그렇게 지낸 것은 소용이 없고 원혼을 다시 불러 큰 굿을 해야 죽은 딸도 편안하고 집안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것을 지켜보고 있던 며느리가 “어머니! 그 천도재 제가 해주면 안될까요?”라며 “집에 가서 대칼을 갈고 물을 한솥 끓여 무덤에 꽂고 부어버려야 하겠습니다. 죽은 귀신이 어찌 산 귀신을 괴롭힙니까”라며 당돌하게 말했다. 순간 안색이 하얗게 변한 무당은 “이 노릇 삼십 년만에 이런 일은 처음 당합니다. 신령님조차 며느리 때문에 부들부들 떨고 계세요”라며 두 사람을 쫓아냈다. 그 뒤로 시어머니는 다시는 무당집엘 드나들지 않게 되었고 딸에 대한 애착도 끊게 되었다. 무당집에서의 며느리 말이 진짜 천도재 역할이 되었는지 복잡하던 집안도 평온을 찾았다. 여기서 며느리의 천도대상은 시집의 죽은 딸이 아니었다. 바로 슬픔과 원한으로 자리잡혀 있는 죽은 딸에 대한 시어머니의 마음이었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사십구일째 되는 날에 천도재를 지낸다. 재(齋)란 공양이라는 뜻이다. <구사론> <지장경>에 의하면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49일동안을 몸이 없는 중음신(中陰身)으로 떠돌다가 새로운 세상에 태어나게 되는데 이때 7일마다 불보살을 청하고 음식을 베풀어 법문을 들려주면 그 공덕으로 좋은 몸을 받게 되거나 왕생극락하게 될 뿐만 아니라 산 사람에게도 공덕이 된다고 한다. 천도의식은 죽은 사람과 산 사람 사이의 업보를 부처님 앞에서 함께 푸는 작업이다. 산 사람은 죽은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고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는 것이 사십구재나 천도재의 목적인 것이다. 스님들이 천도재 때 읊는 경문을 주의깊게 살펴보면 망자의 넋 뿐만 아니라 천도재에 참석한 유족들에게도 해당하 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불자들이 알고 있는 천도의식은 산사람에게는 향해져 있지 않고 모두 죽은 사람들에게만 향해 있다. 불교의 모든 의식은 마음을 밝히고 깨달아 일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데 그 의미를 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많은 불자들이 사십구재나 천도재를 하나의 제사의식으로만 여긴 나머지 비는 사람, 비는 불공으로 되어 버렸다. 집안에 우환이 생기거나 몸이 아프면 조상이 천도가 안 돼서, 무슨 귀신이 붙어서 하는 식으로 생각하여 천도재의 본뜻을 저버리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월례행사처럼 천도재를 지내 산 사람이 망자에게 묶이는 형국을 가져오게 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빼버린 사십구재나 천도재는 무의미하다. 업에 의해서 만난 부모, 자식, 형제, 친척, 친구간의 인연은 언젠가는 헤어져야 하며 남는 것이라곤 슬픔 회한 통곡뿐이다. 집착과 갈애 때문이다. 49재와 천도재는 인연의 애착심을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놓아 버리고 부처님의 깨달음 속에서 자유를 찾고자 하는데 있다. 죽은 자 가기 싫고 살아있는 자 보내기 싫어 울부짖는 마음에서 인연은 고통이요 허무라는 것을 깨달아 살아있는 동안에 서로 사랑하고 아껴주면서 마음과 마음끼리 얽어매지 말아야 한다는 것과 내 몸도 내 것이 아닌데 무엇을 내 것으로 여겨 세상에 연연하고 미련을 둘 것인가를 배워 죽은 자는 자유롭게 떠나고 산 자는 미련없이 보내야 하는 것이다. 산사람 마음에서 죽은 사람의 천도가 안된다면 그 천도재는 잘못된 것이요, 죽은 사람 마음에서 생전의 인연들이 천도가 안된다면 그 천도도 미완성의 천도재이다. 어떠한 마음가짐과 견해를 가지고 사십구재를 맞이하고 천도재를 지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출처 : 화계사불교대학
글쓴이 : 수보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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