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은 무소유와 소통의 웅변적 증거였다. 학식이 뛰어나고 지체가 높으며 활동이 유명했던 스님은 많다. 그러나 사바(娑婆)의 풀어진 마음에 매듭을 남긴 이는 많지 않다. 17년 전 입적(入寂)한 성철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 했다. 존재와 분수를 소중히 여기라는 깊은 언어였다. 법정의 메시지는 ‘무소유’였다. 산문집 『무소유』는 180쇄라는 탈(脫)사바의 기록을 남겼다. 말과 행적이 달랐다면 그렇게 많은 이가 책을 찾진 않았을 것이다. 법정은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병상에서도 자신이 기거하던 강원도 화전민의 오두막을 그리워했다.
육체는 무소유였지만 그의 정신은 인간에 대한 뜨거운 갈구였다. 그는 쓰고, 공부하고, 가르치고, 함께 뒹굴었다. 1970년대 반독재 운동에 동참했고 불교신문 편집국장, 송광사 수련원장, 보조사상연구원장 등을 지냈다. 환경보호·생명사랑 시민운동에도 열심이었다. 소유하지 않으면 소통이 쉬워지는 것인가. 그의 법회에는 김수환 추기경이 왔고, 추기경의 미사엔 그가 갔다.
그가 떠난 한국 사회는 소유욕으로 어지럽고 불통(不通)으로 신음한다. 학력·돈·아파트·계급으로 질주하고 양극화·교육격차·세종시로 막혀 있다. 교회는 날로 대형화하고 사찰엔 여전히 잡음이 많다. 법정의 무소유와 소통이 그래서 더욱 그리운지 모르겠다. 성철 종정(宗正)은 멀고 깊은 곳에서 사바를 만졌다. 법정은 가깝고 낮은 곳에서 사바와 뒹굴었다. 그의 영혼은 지금 무소유의 공간에서 더욱 자유로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