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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마음 산책] ‘공부의 신’을 만나다

나의 이야기

by 적산 2010. 3. 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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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산책] ‘공부의 신’을 만나다

 

이즈음 전자메일함을 열 때마다 영어로 된 편지가 곧잘 들어와 있다. 재주를 돌아보지 않고 의욕만 앞세운 채 전통사상서 한글 번역 및 영역(英譯) 작업에 끼어든 탓이다. 한문으로 된 한국 역대 고승들의 명저를 엄선한 13권이 일차작업의 대상이었다. 7권 한글본은 지난해(2009년) 12월에 이미 나왔고 나머지 6권은 이번 3월 하순 무렵 출간을 앞두고 있다. 이제 한글 번역작업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지구촌 시대라 모두가 비행기를 버스 타듯 하고 이웃나라를 ‘마실’ 가듯 다닌다. 해외 어학연수를 학원 가듯 하는 세상이 되었고, 지자체마다 ‘영어마을’이란 상업적인 간판마저 당당하게 내걸기에 이르렀다. 많은 대학과 연구소는 이미 영어 상용화를 현실화하고 있다. 영어의 공용화마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된 듯하다. 한국의 불교문화 역시 이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래서 지관(智冠) 대종사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영역 사업을 발원하신 것이었다.

이런 흐름을 비교적 빨리 간파한 곳이 티베트 불교계였다. 영어시대를 오래전에 이미 예언한 것이다. 티베트 망명정부가 살아남은 것도 결국 구성원들의 ‘유창한 영어실력’의 결과였다. 일찍부터 그들은 세계 곳곳에 문화원을 세웠다. 그 덕분에 지구촌에서 가장 잘 알려진, 그리고 영향력 있는 교단이 되었다. 얼마 전에 달라이 라마 성하가 백악관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만난 사진이 크게 언론을 장식했다. 대국인 중국을 의식해 ‘뒷방’에서 만났음을 유독 강조했고, 공식적으로 내놓은 것은 유일한 한 컷짜리 사진이 전부였지만 이런 외교력 역시 영어불교를 빼곤 설명이 어려울 것이다. 국가적 어려움이 오히려 세계화를 지향하도록 만들었으니 이걸 일러 전화위복이라고 하겠다.

[그림=김회룡 기자]
하지만 남의 나라 언어를 습득하는 것이 말처럼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다. 그 옛날 인도에서 중국으로 불교문화를 전파하고자 건너온 승려들은 당연히 중국어 때문에 애를 먹었다. 지금처럼 학원이 우후죽순처럼 서 있는 시절이 아니었으니 독학 내지는 개인교습을 받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인도말과 중국어를 동시에 구사하는 선생을 만나기란 모래톱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종교적 열정과 언어습득 능력은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니었다. 대부분 얼기설기 괴발개발 해가며 독학의 길을 걸었을 것이다,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 394~468) 스님 역시 그랬다. 5세기께 인도에서 중국으로 왔으나 서툰 중국어가 더 이상 늘지 않았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은 기도였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하던 어느 날 밤 흰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나 머리를 통째로 바꾸어주는 꿈을 꾸었다. 그 이후부터 중국어가 유창해졌다. 그야말로 ‘공부의 신’을 만난 셈이었다.

중국어건 영어건 아무리 잘한다 할지라도 모국어가 아닌 이상 언어 스트레스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일정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선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왕도가 없는 줄 뻔히 알면서도 편법으로 누구든지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지름길 내지는 요행수를 찾아보게 마련이다. 그런 중생들의 희망이 모여 있는 종교적 전각들이 더러 있다. 일본 후쿠오카의 ‘공부의 신’을 모셨다는 덴마구(天滿宮)는 입시 때마다 열도 전역에서 찾아와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고 비는 신사(神社)로 유명하다. 경기도 안성의 칠장사는 조선시대 암행어사로 이름 높던 박문수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으로 가던 과거 길에 들러 하룻밤 묵어간 곳이다. 꿈속에서 과거시험 문제를 미리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후 장원급제를 꿈꾸는 모든 선비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고 지금도 수험기도에 영험 있는 성지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현대에 ‘영어’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원명 스님이다. 영어를 익히게 된 동기가 참으로 선적(禪的)인 까닭이다. 그는 출가 이후 십 년 동안 열심히 참선공부를 위해 선방을 전전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스승인 성철 선사에게서 받은 화두는 간 곳 없이 저만치 멀어져 버렸고, 그 사이를 비집고 망상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망상이 참으로 재미있는 내용이었다. 난데없이 학교에 다닐 때 배우던 영어가 생각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보통의 경우 잠깐 그러다가 사라지게 마련인데 이건 그게 아니었다. 그 내용이 모두 외워질 정도로 또렷하게, 그리고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영어가 화두 자리를 대신한 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머릿속을 빙빙 돌았다. 그래서 해제하면 서울 가서 딱 석 달만 영어공부를 하고 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것은 망상 치료법이었다. 그동안 참선을 통해 의식이 맑아진 탓인지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그렇게 배운 영어는 자연히 외국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이후 한국의 불교문화를 외국에 알리는 데 남다른 열정으로 평생을 헌신했다. 선방에서 무단히 떠오른 영어 망상이 그가 만난 ‘공부의 신’이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에 ‘일만 시간의 법칙’이 나온다.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을 10년 동안 하루 3시간 이상 꾸준히 노력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설이다. 7080세대의 많은 한국인이 10년 동안 영어공부를 위해 매일 3시간이 아니라 그 이상 투자했을 텐데 대부분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일만 시간의 법칙이 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세상은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으로 나누어도 될 만큼 세계화되었다. 그래도 절집에서는 고전한문만 제대로 해도 외국어를 잘하는 것으로 인정해 줬다. 다행히도 역경승 구마라집(鳩摩羅什·344~413)과 현장(玄?·?~664) 법사의 헌신적 노력의 결실로 완성된 방대한 한역대장경 때문에 다른 외국어를 몰라도 ‘학자 노릇’을 하는 데 별다른 불편함이 없었다. 필자도 그동안 한문 독해력을 밑천 삼아 학승 행세를 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얼마 전 일본 하나조노(花園)대학 선학연구소 관계자들과 자리를 함께했을 때 “다음 생(生)에는 영어·일어·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기를 발원하고 있다”라고 하여 그만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하긴 구나발타라 스님처럼 지금이라도 ‘공부의 신’을 각각 세 번 만나기만 한다면 당장 3개국어가 능통할 수 있는 길이 없는 것도 아니다.

원철 조계종 불학연구소 소장
출처 : 시낭송
글쓴이 : 하늘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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