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정조의 글 솜씨

나의 이야기

by 적산 2012. 7. 13. 08:17

본문

 

솔직한 인정을 드러낸 정조의 글 솜씨
정조(正祖, 1752~1800)는 재위 기간 내내 과중한 격무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는 과중한 정무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어 많은 편지를 썼다. 그는 편지를 활용하여 막후에서 정치를 하는가 하면, 인척과 막역한 신하에게는 자신의 정감을 스스럼없이 드러내었다. 그 역시 국왕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조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편지를 적어 자신의 인정과 인간미를 솔직하게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숙모님께
가을바람에 기후 평안하신지 문안을 알기를 바라오며, 뵈온 지 오래되어 섭섭하고 그리워하였는데, 어제 봉한 편지를 보고 든든하고 반가워하였으며 할아버님께서도 평안하시다 하오니, 기쁘기 한이 없나이다.
― 원손元孫 올림


정조가 아직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지 않았던 시기, 외숙모에게 보낸 한 통의 한글 편지다. 정조가 8살에 왕세손에 책봉되었으니, 어린 아이였을 때 보낸 편지임을 짐작할 수 있다.


어린 왕세손이 편지를 보낸 외숙모는 사도세자의 빈嬪이던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다. 이 한글 편지는 혜경궁 홍씨의 친정 오라버니댁에 보낸 것이다. 실제 글씨를 보면 어린 아이 특유의 귀여운 필체가 살아있는 듯하다. 내용 또한 외가의 집안 어른께 문안을 드리는 편지의 형식에 맞추어 편지를 쓰려고 한 흔적이 곳곳에 묻어있다. 원손이라는 표현만 없다면, 그야말로 정감과 감수성이 그대로 묻어나온 여느 아이의 편지와 전혀 다름없다.


정조는 재위기간 동안에도 편지를 즐겨 썼다. 다른 국왕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는 호학군주好學君主이자, 군사君師로 자임할 만큼 학문과 글쓰기를 좋아하였고 편지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였다. 어린 시절의 경험을 훗날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인정人情을 적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다
정조는 편지를 활용하여 친족은 물론 자신의 정치적 입장과 반대편에 있던 사람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그는 무엇보다 인간적으로 가깝게 하는 토대 위에서 관계를 맺었다. 정조는 위엄 있고 권위가 넘치는 국왕으로 알려졌지만, 그 이면에 인간미 넘치는 면모가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연말 선물을 잘 세어서 받도록 해라. 그리고 새해 초기에는 똑같이 대해주는 규칙이 있어야 적합하다. 젖먹이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역시 각각 적은 양이라도 똑같이 나누어 주어 한 해를 지낼 수 있는 물품으로 삼아야 한다. 물품 목록은 편지 끝머리에 있다. 이만 줄이며 이름은 쓰지 않는다.


홍취영洪就榮에게 보내는 물품 : 안경 한 부部, 생치生雉 2마리, 조기 2묶음. 산귤 20개, 편지지 50폭, 담뱃대 1개, 향초 3근, 당혜 1켤레.
홍노영洪魯榮에게 보내는 물품 : 생치 1마리, 곶감 1접, 편지지 30폭, 담배 2근.
보寶와 우愚에게 보내는 물품 : 각各 생치 반 마리, 쌀 3말, 편지지 30폭.
홍재주洪載周에게 보내는 물품 : 『아송雅頌』 1건, 생치 1마리, 산귤 10개.
― 홍취영洪就榮에게 보낸 편지, 1799년 12월 11일.〔與某人]


정조는 특히 외가 쪽 인사들에게 자신의 심정과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었다. 정조 역시 감정을 드러내는 인간이기에 자신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대상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정조는 누구보다 외사촌 동생이던 홍취영(洪就榮, 1759~?)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위의 편지는 정조가 홍취영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보낸 연말연시 선물을 고르게 나눠줄 것을 당부한 내용이다. 정조는 안경과 생치, 편지지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선물의 품목을 편지에 적은 다음, 조카들에게까지 고루 나누어 주도록 당부를 하고 있다. 정조의 세심한 배려와 진솔한 마음이 그대로 묻어 나온다. 특히 정조는 조카인 홍재주洪載周에게 8권 2책의 『아송』을 선물로 주었다.

 

이는 어린 조카가 공부해야 할 방향까지 신경을 쓰는 정조의 인간미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처럼 정조는 국정에 겨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외가 인척들에게 수시로 편지를 적었다. 그는 편지와 함께 외가에 선물을 보내 자신의 인정도 함께 전하였다. 무엇보다 격식을 따지지 않고 적은 정조의 편지는 다정다감한 그의 내면 모습 그대로일 터이다. 그래서 이를 받는 사람의 느낌은 인정 이상의 감동과 울림을 느꼈을 것임에 틀림없다. 

 

출처 : 구미문화지킴이(문화탐방단./ 옛.생활문화연구소)
글쓴이 : 청산거사 원글보기
메모 :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