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스크랩] 경남창녕 관룡사

불교사랑

by 적산 2012. 10. 15. 23:09

본문

경남창녕 관룡사                                                                        written by 한국의 사찰과 문화유산

 ▲ 관룡사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 모습(2002년 4월 촬영)

관룡사 석장승(경남 민속자료 6호)  

 ▲ 도난/회수 이후의 석장승 모습(2006년11월)

 ▲ 도난 이전의 석장승 모습(2002년 4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관룡사로 가는 오솔길 양쪽에 서 있는 한 쌍의 돌장승이다. 사찰 입구에 두는 장승은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과 더불어 잡귀의 출입을 막고, 풍수지리적으로 허한 곳의 기운을 불어넣는 등의 기능을 하게 되는데, 이곳의 장승은 사찰의 경계표시·수문장의 역할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 의해 그들의 수호신이 되고 있다.

도난 창녕 석장승, 충남 홍성서 발견

뉴시스|기사입력 2004-02-02 15:45 |최종수정2004-02-02 15:45

지난 11일 분실됐던 경남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관룡사 경내 석장승 1쌍이 충남 홍성의 폐공장에서 발견, 회수됐다. 2일 창녕군과 창녕경찰서에 따르면 1일 오후 1시20분께 창녕군청 대표전화로 걸려온 "석장승이 충남 홍성군 구항면 폐공장에 있다"는 내용의 제보전화를 현장 확인한 결과, 구항면 구항리 D벽돌 폐공장 내에서 발견됐다.

이에 따라 경찰은 창녕군으로 걸려온 전화번호를 역추적, 제보자 인적사항을 조사하는 한편 석장승이 발견된 홍성 등지 문화재 전문 절도 용의자와 일대 장물업자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창녕군은 지난 10일 오후 군청 문화공보과 직원들이 지난해 태풍 '매미' 당시 산사태로 쓰러져 훼손방지를 위해 흙으로 덮어 두었던 석장승들이 없어진 것을 발견, 경찰에 도난신고를 했다.

▲ 관룡사 돌계단과 석문 입구 전경(2006년 11월)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으며, 경치가 좋기로도 유명하다. 원효가 제자 송파와 함께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리다 갑자기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때부터 절 이름을 ‘관룡사’라 하고 산 이름을 구룡산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 돌문 사이로 본 모습

▲ 돌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우측 길을 따라서 오르면 입구가 바로 보입니다.

▲ 경내로 들어서면 바로 좌측에 있는 범종각과 종각내 법고 모습입니다.

보물 212호(관룡사 대웅전)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상을 모셔 놓는 것이 일반적인데, 특이하게 이 관룡사 대웅전엔 비로자나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1965년 8월 보수공사 때, 천장 부근에서 발견한 기록에 따르면 이 건물은 조선 태종 1년(1401)에 짓고,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광해군 9년(1617)에 고쳐 세워, 이듬해에 완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앞면과 옆면이 모두 3칸 크기이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가운데부분을 한층 높게 한 점이 특이하다.

 ▲ 원음각(대웅전 정면)  ▲ 칠성각(대웅전 우측)

 ▲ 산령각과 응진전(칠성각 뒤편)  ▲ 명부전(대웅전 좌측)

보물 146호(관룡사 약사전)

 ▲ 관룡사 약사전 전경(2006.11 촬영)  ▲ 2002년 4월 촬영, 당시 대웅전 보수중인 모습 보임

관룡사는 신라시대 8대 사찰 중 하나로 절의 역사에 관한 뚜렷한 기록은 없다. 임진왜란 때 약사전만 남기고 다른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타버렸다고 한다. 약사전은 조선 전기의 건물로 추정하며, 건물 안에는 중생의 병을 고쳐 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1칸·옆면 1칸으로 매우 작은 불당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간결한 형태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 약사전 뒤편 모습  ▲ 약사전 뒤편에서 바라본 명부전과 대웅전

이와 비슷한 구성을 가진 도갑사 해탈문(국보 제50호), 송광사 국사전(국보 제56호)과 좋은 비교가 된다. 옆면 지붕이 크기에 비해 길게 뻗어 나왔는데도 무게와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건물에 안정감을 주고 있다. 몇 안되는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건물로, 작은 규모에도 짜임새가 훌륭하여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11호)  

관룡사 약사전 앞에 있는 3층 석탑이다. 석탑은 바위를 바닥돌 삼아 2층 기단 위에 3층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의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는 기둥모양을 조각했고, 가운데기둥 양 옆으로 얇고 넓직하게 안상을 새겼다.

위층 기단 역시 네 모서리와 면의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탑신부는 1층 지붕돌이 파손이 심한 편이며,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한 개씩의 돌로 쌓아 올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간략화되었다. 규모도 작아졌고, 각 부분의 양식이 간략해진 모습으로 보아, 고려 전기에 만든 작품으로 보인다.

보물 519호(관룡사 석조여래좌상)

관룡사의 약사전에 모셔져 있는 불상이다. 표현기법에 있어 절의 서쪽 계곡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을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머리에는 큼직하게 표현된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이마 위쪽으로 반달 모양이 표현되어 고려시대 불상의 머리 형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귀는 길게 늘어져 어깨까지 내려오고, 목에 있어야 할 3개의 주름은 가슴 윗부분에 표현되고 있다. 옷은 양 어깨에 걸쳐 입고 있으며, 옷주름은 얕은 선을 이용해 형식적으로 표현하였다.

겉옷 안에는 두 가닥의 접힌 옷자락이 역시 도식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오른손은 왼발 위에, 왼손은 오른발 위에 놓여 있는 독특한 손모양이며 왼손 위에는 약그릇이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를 모두 갖추고 있는데, 연속된 거북이 등모양으로 연꽃을 표현하고 있는 상대가 특이하다. 머리에 표현된 반달 모양과 형식화된 세부표현 기법 등에서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을 고려시대에 이 지방의 장인이 본떠 만든 것으로 보인다.

관룡사 부도(경남 문화재자료 19호)  

부도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여 그 유골이나 사리를 모셔둔다. 이 부도는 관룡사 내에 있는 7기의 부도 중 하나로, 절 북쪽의 화왕산으로 오르는 길 옆에 자리하고 있다. 2단의 바닥돌 위로, 아래·가운데·위의 세 받침돌로 이루어진 기단을 쌓고, 공모양의 탑몸돌을 올린 후 사각 지붕돌을 올린 모습으로, 아래에 비해 윗부분의 몸집이 더 커 보인다.

아래 받침돌은 옆면마다 두 개의 공간을 만들어 무늬를 넣고, 윗면에는 연꽃무늬를 둘러 새겼다. 가운데 받침돌 역시 조각을 두었으나 무늬가 뚜렷치 않고, 윗받침돌 밑면에 새긴 연꽃무늬 역시 많이 닳아있는 상태이다. 지붕돌의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있었을 듯 하나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부도의 구조와 조각솜씨들로 보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비록 많이 닳아있긴 하나, 창녕군의 대표적인 부도라 할 만큼 아름답고 정교한 작품이다.

보물 295호(관룡사 용선대 석조 석가여래좌상)

관룡사 근처의 용선대에 있는 석불좌상으로 산 꼭대기 높은 바위 위에 모셔졌으며 광배는 없어진 상태이다. 머리에는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을 붙여 놓았으며 정수리 부근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가 큼직하게 솟아 있다. 얼굴은 풍만하고 단아한 인상이며 미소를 띤 표정에서는 자비로운 불심이 느껴진다.

양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몸에 밀착되었으며,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인 모습이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양감이 줄어들고 약간 위축된 모습이지만 안정감 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무릎에 놓인 손은 두툼하지만 섬세하게 조각되었으며, 앉은 자세에서는 다소 둔중함이 느껴진다.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는 상·중·하대로 구성되어 있다. 반구형의 상대석은 연꽃을 새겼고, 8각 중대석은 각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두었으며, 하대석은 4각의 받침 위에 겹으로 연꽃무늬를 새겨 넣었다. 양감이 줄어든 신체 표현, 도식적인 옷주름선, 8각 연꽃무늬 대좌의 형식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9세기경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 용선대 사진 3장은 2002년 4월 촬영  ▲ 위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출처 : 운 암 사
글쓴이 : 운암사 원글보기
메모 :

관련글 더보기